작년 9월에 처음 봤던 드라마를 다시 틀었습니다. '착한여자 부세미'가 재방송을 시작했고, 저도 모르게 또 정주행을 하고 있습니다. 범죄·스릴러·로맨스가 한 드라마 안에 다 들어있는데도 산만하지 않고 오히려 속도감이 좋아서,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가 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1. 흙수저 경호원의 재벌 입성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 이 드라마를 클릭한 건 순전히 '부세미'라는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이름 하나가 이렇게 독특할 수가 있나 싶어서 일단 봤는데, 도입부 5분 만에 설정 자체에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주인공 김영란은 소년원 전과와 막대한 빚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흙수저입니다. 그런 그가 가성그룹 가성호 회장의 개인 경호..
기대치 제로로 틀었다가 마지막 회까지 멈추지 못한 드라마가 있습니다. 작년 겨울,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걸린 'UDT: 우리동네 특공대'가 그랬습니다. 특수부대 출신 요원이 평범한 보험조사관으로 위장해 동네를 지킨다는 설정, 솔직히 처음엔 조금 유치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틀렸습니다.1. 기대 없이 시작했다가 정주행한 이유 일반적으로 '동네 영웅물'은 설정이 무거울수록 전개가 늘어진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이 드라마는 정반대였습니다. 에피소드마다 사건이 빠르게 터지고, 그 사건이 더 큰 음모와 맞물리는 구조라 매회 다음 화가 궁금했습니다.주인공 최강은 보험사 SIU팀, 즉 보험사기조사팀(Special Investigations Unit)의 에이스로 위장 취업 중인 인물입니다. 여기서 SIU..
귀엽다는 이유로 무시했다가 극장을 나오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은 어린이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극장에 앉은 관객 대부분은 어른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딸과 함께 보고 나서야 왜 그런지 이해했습니다. 귀여운 그림 뒤에 완벽한 선도 완벽한 악도 없는 세계가 숨어 있었습니다.1. 귀엽다고 방심했다가 소름 돋은 잔혹동화의 구조 애니메이션이 유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걱정이 틀렸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객석을 가득 채운 건 아이들이 아니라 20~30대 성인들이었고,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이 작품은 문학에서 말하는 '잔혹동화(dark fairy tale)' 장르의 문법을 그대로 따릅니다. 잔혹동화란 겉으로는 평화롭고 ..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기대를 품었다가, 그 작품이 유작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먹먹함은 꽤 오래 남습니다. 2026년 10월 5일 첫방송을 시작한 ENA 드라마 '연애박사'가 저에게 꼭 그런 작품입니다. 안판석 감독이 모든 촬영과 편집을 마친 뒤 뇌출혈로 별세하시면서, 이 12부작 드라마는 그분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1. 안판석 감독의 유작이 된 사연 안판석 감독하면 저는 자동으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떠오릅니다. 그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남녀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인식해 가는 방식이 너무나 현실적이라 몇 번을 되감아 봤습니다. '밀회', '봄밤', '풍문으로 들었소', '하얀 거탑'까지 그분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
배우 김민이 사는 집은 1938년에 지어진 약 90년 된 구옥입니다. 동두천에 위치한 이 낡은 집을 처음 봤을 때 저도 솔직히 '이게 실제로 사람이 사는 공간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이 공간에는 다른 어떤 인테리어 화보에서도 볼 수 없는 밀도가 있었습니다.1. 1938년생 구옥, 불편함이 낭만이 되는 공간 이 집은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올려 생활용 수로 쓰고, 전력도 발전기에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명백히 불편한 환경입니다. 그런데 김민 배우는 이런 환경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했는데, 처음엔 저도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여기서 지하수 펌프 방식이란 지표면 아래의 대수층(帶水層)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도시 상수도 대신 땅속 물을 직접 ..
제가 이 드라마을 본게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정말 마음을 울리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를 봤을 때 저는 그냥 '노인들 이야기겠지' 하고 별 기대 없이 틀었습니다. 그런데 첫 회가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났고, 마지막 화를 보고 나서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이 드라마 생각이 납니다. 노희경 작가가 그린 황혼기 인생의 민낯은, 드라마라기보다 제 부모님 세대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습니다.1. 황혼기 인간 군상의 진짜 얼굴 일반적으로 노년을 다루는 드라마라 하면 잔잔하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제 경험상 이 드라마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황혼기(黃昏期), 즉 인생의 저물녘에 접어든 시기를 다루면서도 이 작품은 불편하고 날..
솔직히 저는 1974년 8월 15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광복절 기념식 생중계 도중 육영수 여사가 피격당했다는 사실은 부모님께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사건이 이렇게 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는 건 영화 '암살자들' 소식을 접하고서야 제대로 파악하게 됐습니다. 아직 개봉 전이지만 제가 이미 기대를 접을 수 없는 이유가 생겼습니다.1. 8.15 저격사건, 그날 생중계에서 벌어진 일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대강당에 한 남자가 조용히 들어섭니다. 그의 이름은 문태강. 그는 총알 다섯 발을 장전한 채 현장에 침투했고, 결국 대통령 연설 도중 총성이 울렸습니다. 전 국민이 TV 앞에 앉아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그 순간, 육영수 여사가 쓰러졌습니다.여기서 '생중계 ..
주말 저녁 별 생각 없이 틀었다가 새벽 두 시까지 붙잡혀 있었던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환혼입니다. 처음엔 그냥 시간 때우려고 봤는데, 어느 순간 정주행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환혼술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사제 관계가 뒤틀리며 사랑으로 발전하는 이야기 구조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1. 대호국이라는 세계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설정 환혼은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나라 '대호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이 세계관이 생각보다 꽤 촘촘하게 짜여 있었습니다. 무술과 마법이 공존하고, 그 중심에는 환혼술이라는 핵심 설정이 있습니다. 여기서 환혼술이란 다른 사람의 몸에 혼을 옮겨 넣는 술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영혼 교체 기술인데, 이게 단순한 설정 장치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
낯선 사람 20명이 한 팀이 돼서 파리로 떠난다는 설정, 처음엔 그냥 예쁜 풍경이나 보여주는 드라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는 마음이 좀 따뜻해졌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느낀 온도가 예상보다 훨씬 높았거든요. 2017년 방영된 tvN 드라마 는 패키지 여행(인솔 가이드가 일정 전체를 책임지는 단체 해외여행)이라는 독특한 포맷 안에 각자의 상처를 품은 인물들을 밀어 넣어, 관광지 소개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를 했습니다.1. 패키지여행이 이렇게 쓸 수 있는 무대였구나 저는 내향인이라 패키지 여행은 평생 안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과 버스에 같이 타고, 밥도 같이 먹고, 자유시간도 눈치 봐가며 써야 한다는 게 피곤하게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으로 "이거 ..
추석이 다가올 때마다 저는 묘하게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즐거운 명절임에는 틀림없는데, 해마다 반복되는 장면들이 자꾸 머릿속에 걸립니다. 오래전에 봤던 드라마 《며느라기》를 이번 추석을 앞두고 다시 꺼내 봤습니다. 처음 볼 때보다 훨씬 더 현실로 느껴졌고, 웃으면서도 씁쓸한 감정이 계속 남았습니다. 1. 며느라기란 무엇인가 — 드라마가 포착한 현실 드라마 《며느라기》에는 '며느라기'라는 독특한 개념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며느라기란, 시댁으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희생과 헌신을 반복하게 되는 며느리의 심리 상태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자발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구조적으로 강요된 순응'입니다. 주인공 사린이 시어머니 생신상을 자진해서 차리는 장면이 그 시작인데, 처음에는 스스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