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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20명이 한 팀이 돼서 파리로 떠난다는 설정, 처음엔 그냥 예쁜 풍경이나 보여주는 드라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는 마음이 좀 따뜻해졌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느낀 온도가 예상보다 훨씬 높았거든요. 2017년 방영된 tvN 드라마 <더 패키지>는 패키지 여행(인솔 가이드가 일정 전체를 책임지는 단체 해외여행)이라는 독특한 포맷 안에 각자의 상처를 품은 인물들을 밀어 넣어, 관광지 소개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를 했습니다.
1. 패키지여행이 이렇게 쓸 수 있는 무대였구나
저는 내향인이라 패키지 여행은 평생 안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과 버스에 같이 타고, 밥도 같이 먹고, 자유시간도 눈치 봐가며 써야 한다는 게 피곤하게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으로 "이거 나름 낭만 있는데?" 싶었습니다.
드라마 속 가이드 소윤은 총 20명짜리 단체팀을 인솔합니다. 그중 12명은 아줌마 무리로 구성된, 솔직히 말하면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팀입니다. 총무가 출발 직전 여권 대신 마스크팩을 챙겨오는 바람에 출발이 지연되고, 어렵게 예약해 둔 식당과 유람선 일정이 도미노처럼 무너집니다. 인솔 가이드(투어 컨덕터)란 일정 전체를 현장에서 조율하는 역할인데, 이 드라마는 그 직업이 얼마나 극한의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지를 꽤 현실감 있게 보여줬습니다.
여기에 마루라는 인물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집니다. 그는 프랑스 입국 심사(입국 심사관이 여권·안면 정보 등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 단계에서 과거 사진과 현재 얼굴이 다르다는 이유로 조사실에 억류됩니다. 1시간 넘게 지연되자 팀 전체의 분노가 폭발하고, 마루는 그 순간부터 일행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힙니다. 제가 이 장면을 봤을 때 실제 해외 입국 심사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얼마나 당황스러울지 생생하게 상상이 됐습니다.
- 패키지 여행의 구조적 특성상 한 명의 이탈이 전체 일정에 즉시 영향을 미침
- 입국 심사 지연, 총무 실수 등 실제 일어날 법한 해프닝을 현실적으로 묘사
- 가이드 소윤을 통해 서비스직 감정노동의 무게를 구체적으로 드러냄
2. 인간군상의 갈등이 드라마를 살렸다
드라마에는 로맨스 외에도 다양한 여행객들의 사연이 교차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울렸던 건 처음 해외여행을 온 중년 부부 이야기였습니다. 아내가 중증 질환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 남편이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두 사람이 파리에서 조금씩 화해해 나가는 과정이 아주 조용하게, 그런데 꽤 깊게 와닿았습니다. 슬프기도 했고, 뭔가 찌르는 게 있었습니다.
이런 서브 플롯들이 드라마를 받치는 구조를 앙상블 드라마(ensemble drama)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앙상블 드라마란 주인공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인물의 서사가 동등한 비중으로 맞물리며 전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형식입니다. <더 패키지>는 이 구조를 꽤 잘 활용했습니다. 갑수 아저씨의 툭툭 터지는 짜증, 장기 연애 커플의 지쳐버린 싸움, 마루의 내부 고발로 인한 직장 갈등과 여자친구와의 멀어짐까지, 각 인물이 왜 이 시점에 프랑스에 와 있는지가 설득력 있게 쌓입니다.
마루 역을 맡은 정용화의 연기가 솔직히 조금 어색한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부분은 보다 보면 캐릭터에 익숙해지면서 덜 눈에 띄기도 하는데, 처음 몇 화는 좀 걸렸습니다. 소소 역의 이연희와의 로맨스는 그래도 과하지 않아서 보기 편했습니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보여주려는 시도가 느껴졌거든요. 퐁네프 다리에서 밤에 나누는 대화 장면, 쓸쓸한 감각을 공유하는 그 리듬은 꽤 좋았습니다.
한국 드라마의 서사 구조에 대해 출처: 영화진흥위원회(KOFIC)는 2010년대 중반 이후 단일 주인공 중심 서사에서 집단 서사로의 전환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더 패키지>는 그 흐름 위에 있는 드라마로 볼 수 있습니다.
3. 몽생미셸은 그냥 배경이 아니었다
솔직히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가장 강하게 남은 건 이야기보다 몽생미셸의 화면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 속 야간 촬영으로 담아낸 수도원의 실루엣은 정말 다른 세계처럼 보였습니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위치한 몽생미셸(Mont-Saint-Michel)은 조석 간만의 차로 인해 하루에 두 번 바닷물에 둘러싸이는 조간대(tidal flat) 위의 섬입니다. 조간대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드러났다 잠겼다 하는 해안 지형을 말하는데, 이 때문에 몽생미셸은 시간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줍니다. 드라마가 야간 투어 장면을 넣은 건 꽤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드라마 속 미신 중 하나로 "천사의 발밑에서 영원한 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게 실제 몽생미셸에서 전해지는 전설인지, 드라마가 만들어낸 설정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주는 분위기 자체가 그런 이야기를 붙이기에 어울리는 곳이라는 건 화면만 봐도 납득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개연성이 아쉬웠던 건 몽생미셸 수도원 관광 중 마루가 실수로 정조대를 차게 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경찰과 시청까지 출동하고 그 소식이 한국 회사에까지 퍼진다는 흐름이 코미디로는 재미있었지만,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과는 좀 동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사건 이후 마루가 "이미 다 망했으니까" 하는 해탈 상태로 전환되는 내면 서사 변화(character arc, 인물이 이야기를 거치며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궤적)는 납득이 됐습니다.
<더 패키지> 촬영지인 프랑스 관광 정보와 몽생미셸 방문 정보는 출처: 프랑스 관광청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찾아봤더니 실제 야간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나와 있어서, 언젠가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생겼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패키지 드라마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17년 tvN에서 방영된 작품으로, 현재는 주요 국내 OTT 플랫폼이나 네이버 시리즈온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별 서비스 여부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 직접 검색해 보는 게 정확합니다.
Q. 더 패키지에 최우식이 나온다고 하던데 어떤 역할인가요?
A. 최우식은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지금이야 <기생충> 이후 국제적으로 알려진 배우지만, 당시에는 이름을 막 알려가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봤을 때는 솔직히 최우식인 줄도 몰랐고, 나중에 알고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시절 연기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Q. 몽생미셸 실제로 드라마처럼 야간에 들어갈 수 있나요?
A. 네, 실제로 몽생미셸 수도원은 야간 조명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다만 시즌과 운영 일정에 따라 달라지므로, 방문 전 프랑스 관광청 공식 사이트나 몽생미셸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Q. 이 드라마 로맨스가 주가 되나요, 아니면 다른 이야기도 많나요?
A. 로맨스는 있지만 전면에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앙상블 드라마 형식답게 여행객 각자의 사연이 골고루 다뤄집니다. 제 경험상 오히려 로맨스보다 중년 부부나 일행들의 에피소드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결론
10년 전쯤 봤던 드라마인데 지금 이렇게 다시 정리하고 나니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게 스스로도 좀 놀랍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드라마는 화려하거나 긴장감 넘치는 장르물이 아니었고, 그냥 각자의 짐을 들고 낯선 곳에 도착한 사람들이 서로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에 한국에 돌아온 여행객들이 다 같이 모이는 장면, 그 꽉 닫힌 결말이 유독 좋았습니다.
주인공 연기가 다소 어색한 장면이 있었고, 정조대 에피소드처럼 개연성이 좀 느슨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드라마 전체의 온도를 떨어뜨리지는 않았습니다. 내향인으로서 패키지 여행을 한 번도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 없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같은 일정을 소화하면서 생기는 충돌과 화해,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뜻밖의 연결 같은 것들이 여행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해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프랑스, 특히 몽생미셸은 꼭 가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적지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